이글루스에서의 블로그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어제 민노씨를 만났다. 민노씨를 모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당장 클릭. 그의 옛글들은 하루만 지나면 가치를 잃어버리는 블로고스피어의 글들 중에서도 고전의 지위를 가지는 그런 것이다. 당장 이 페이지를 떠나 그의 글을 읽으실 것을 권한다.
그 날의 만남은 2001년부터 시작했던 내 위키의 사람들과 2008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알게된 블로그의 사람들이 결국은 다같이 착한 사람들임을 알게 해준 그런 자리였다. 사람이 사람을 사귀면서 가지는 직관이란 과학보다도, 그 어떤 논리보다도 정확한 것이리라. 사람은 사람을 알아본다. 그것은 오프라인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온라인에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만고의 진리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동료를 끌어모으는 본능이 현대사회에서도 사라질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나의 상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생기신 민노씨와 그리고 조금 늦게 도착한 우리 승환군과 함께한 술자리는 민노
씨의 숨길 수 없는 열정의 폭발로, 승환군의 또한 숨길 수 없는 어법으로 즐거웠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더욱 즐거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원래 술이란 일종의 도구다. 내가 정말 미워하는 나와 8년을 함께한 나의 지도교수와 내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철학이 있다면, 술을 마시고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없는 이에 대한 무시같은 것이다. 물론 나의 절친한 친구들은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나의 스탠스는 친구다. 친구 사이에 뭐 그런 시시껄렁한 허례를 따지는가. 다만 잘 모르는 사이엔 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이들이 편하다는, 그런 실용적인 외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무려 10시간을 함께한 민노씨와 승환군과의 술자리는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도 간만에 즐거웠던 그런 술자리였다. 제국으로 떠나기전, 더 많은 블로거들과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솔직히 foog님과 고재열 기자님을 비롯한 몇명 파워블로거들이 그 자리에 와준다면 내가 술을 살지도 모르겠다. 부비부비).
다음메일건과 관련되어 민노씨와도 안면이 있고, 나와는 포항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기도 한 종욱씨와 함께 새벽 1시가 다되어 인사동의 술집을 나섰다. 그냥 집에 가기도 아쉽고, 뭐 어디 다시 들어가기도 뭐한 그런 상황이었는데 주변이 시끄럽다. 탑골공원 근처에서 사람들이 시위하는 소리가 들렸다.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시위의 조짐을 느끼기는 하였으되 막상 그 자리로 찾아가지는 못했던 터라, 게다가 별 말도 없이 민노씨와는 눈으로 통해버려서 그 자리로 향해 걸었다. 탑골공원 옆의 파출소가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시끄러웠다.
7월 26일, 시위대가 시위를 마치고 보신각 근처의 거리를 점거하고 있었던 와중에 아마도 어떤 술취한 운전자가(운전자 외에도 2명의 친구가 더 있었다) 시위대와 경찰의 통제선 사이에 갇혔던 모양이다. 술도 취했겠다, 이 친구가 시위대를 향해 욕을 했던 것 같고, 흥분한 시위대에 의해 갇힌 이 친구는 도망을 가야 한다는 필사적인 각오로 차를 몰았고, 시위대 5명을 다치게 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간에 시위대는 흥분했고, 경찰에 인도된 그 친구의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원래 흥분한 시위대는 건드리는 법이 아닌데..
여하튼 뉴스에서도 그리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 사건은 어떤 음주운전자의 실수로 얼버무려졌다. 나도 뒤늦게 참여하게 되어서 자초지종은 몰랐지만 대충 그런 사건이었던 듯 하다. 파출소에서 종로경찰서까지 이어진 민노씨와 15살 먹은 어떤 아이의 우정이 사실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는데 그건 민노씨에게 들으시길 바란다. 계속 "두건이형!(민노씨, 그날 두건 쓰셨다)"을 찾던 그 아이와 민노씨의 우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어떤 것이었다.
15살 먹은 어린 아이가 시위에 참여해 경찰을 향해 욕을 날린다는 것이 하나의 충격이었다면, 내게 또하나의 충격이자, 오래 보아온 나를 설레이게 하는 모습은 한 미친 양키의 도발이었다. 다굴의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현피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수백명의 시위대 정면에서 시위대를 향해
"Kim Jung Il has killed two millions of people!"
을 외치는 그 양키의 모습은 가히 내게 충격적이었다. 민노씨와 승환씨가 뽀샵을 할 것이냐 물으셨지만 난 그냥 올린다. 고소하려면 해라. 출금 되기 전에 난 이 나라 뜬다. 희미한 얼굴은 분명 미국인의 그것이라고 보일만한 이미지다.
저 양키, 무려 이십여분 동안, 위에 내가 적은 대사를 큰소리로 시위대를 향해 날렸다. 비록 못하는 영어일진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가서 인터뷰 다하고 취업했다. 자랑은 아니다 ㅡ.ㅡ) 들어보니 이 시점에 김정일을 깐다는 건, 시위대를 까겠다는 거로 들리더라. 주머니에 손 집어 넣고 다가갔다. 솔직히 한대 패주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늦었다. 덩치 좋은 한 청년이 그 녀석에게 "어이 몽키"라며 시비를 걸고 있었다. 더불어 시위대가 녀석을 노려보며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몇몇 시민은 녀석의 애인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취한 것 같으니 데려가라고 타이르고 있었고 녀석의 애인은 울고 있었다. 취한 양키는 몽키였다. 말을 듣지 않는다.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한다 해도 도가 지나친 것은 지나친 것이다. 시위대 앞에서 김정일의 인권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손 쳐도 시위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조중동이 촛불집회에 나오는 시민들에게 좌빨이라는 색깔을 입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생각과는 별개로, 도대체 대한민국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길래, 수백명의 시위대가 운집한 한 가운데서 외국인이 저런 구호를 외칠수 있을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럽게 우습게 보일까? 몇몇 자각 없는 부자들이 동남아에 건너가 그들에게 저지르는 부끄러운 일상처럼 저들도 우리를 그렇게 우습게 생각하는 것일까?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일개 외국인이 수백명과 맞장을 뜰 생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국가라면, 미국의 대통령을 도대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리고 이 땅의 민중들은 너무나 착하다는 사실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단 한번도 아래에서 위로의 완전한 혁명을 이루지 못한 이 땅의 민중들은 그 버릇 없는 몽키양키를 집으로 곱게 돌려보냈다. 어떤 복수도 헤꼬지도 없었다. 그냥 그 친구에게 그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말하는 것이 이 땅의 민중이 가진 상식이었다. 착하다는 것이 죄는 아니다. 이 땅의 민중은 착하다. 그래 착하다.
오래전에 내가 썼듯이 부쉬가 온다. 8월 5일이다. 그 녀석이 온다는 것은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의미다. 촛불은 여전히 밝혀져 있고, 교욱감 선거는 우리의 승리로 점철될 것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를 방문하는 그의 비합리적인 행위는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다. 녀석에게 이 착한, 하지만 한스럽고 무서운 민중의 목소리를 한번쯤은 반드시 들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녀석이 퇴임을 한 후에라도 죽기전에 한번쯤 대한민국에서의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런지 모른다. 아니 그런 두뇌가 없는 녀석일지라도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이익은 다양하고 뚜렷하다. 미국의 잃어버린 10년을 상징하는 녀석에게 세상의 평화라는, 깡패국가의 새로운 제국주의를 거부한다는 목소리를 상기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의 그것처럼 깨끗하고 큰 목소리라면 더욱 어울릴 것이다. 부쉬가 우리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인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부끄럽다. 엊그제 미국대사관에 가서 그 건방지기 짝이 없는 영사의 면전 앞에서 나의 학문을 이야기하고 취업비자를 얻은 나는 부끄럽다. 무엇으로 변명하던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상황에서 그래도 나는 말하고 싶다. 세상의 가치는 한 국가의 깡패됨이 사라지는 그 시점에 얻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 깡패국가의 일개 시민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시위대를 향해 욕을 하는 그런 스탠스는 세계의 불행이라고. 그리고 그런 경멸과 압박의 정치학이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이 가진 반미감정을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녀석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대충 스티브라 부르자. 한마디 하고 싶다.
"스티브, 밤길 조심해라. 밤에 만나면 많이 아플거야."
그 날의 만남은 2001년부터 시작했던 내 위키의 사람들과 2008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알게된 블로그의 사람들이 결국은 다같이 착한 사람들임을 알게 해준 그런 자리였다. 사람이 사람을 사귀면서 가지는 직관이란 과학보다도, 그 어떤 논리보다도 정확한 것이리라. 사람은 사람을 알아본다. 그것은 오프라인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온라인에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만고의 진리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동료를 끌어모으는 본능이 현대사회에서도 사라질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나의 상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생기신 민노씨와 그리고 조금 늦게 도착한 우리 승환군과 함께한 술자리는 민노
씨의 숨길 수 없는 열정의 폭발로, 승환군의 또한 숨길 수 없는 어법으로 즐거웠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더욱 즐거운 일이었지만 말이다.원래 술이란 일종의 도구다. 내가 정말 미워하는 나와 8년을 함께한 나의 지도교수와 내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철학이 있다면, 술을 마시고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없는 이에 대한 무시같은 것이다. 물론 나의 절친한 친구들은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나의 스탠스는 친구다. 친구 사이에 뭐 그런 시시껄렁한 허례를 따지는가. 다만 잘 모르는 사이엔 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이들이 편하다는, 그런 실용적인 외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무려 10시간을 함께한 민노씨와 승환군과의 술자리는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도 간만에 즐거웠던 그런 술자리였다. 제국으로 떠나기전, 더 많은 블로거들과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솔직히 foog님과 고재열 기자님을 비롯한 몇명 파워블로거들이 그 자리에 와준다면 내가 술을 살지도 모르겠다. 부비부비).
다음메일건과 관련되어 민노씨와도 안면이 있고, 나와는 포항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기도 한 종욱씨와 함께 새벽 1시가 다되어 인사동의 술집을 나섰다. 그냥 집에 가기도 아쉽고, 뭐 어디 다시 들어가기도 뭐한 그런 상황이었는데 주변이 시끄럽다. 탑골공원 근처에서 사람들이 시위하는 소리가 들렸다.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시위의 조짐을 느끼기는 하였으되 막상 그 자리로 찾아가지는 못했던 터라, 게다가 별 말도 없이 민노씨와는 눈으로 통해버려서 그 자리로 향해 걸었다. 탑골공원 옆의 파출소가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시끄러웠다.
7월 26일, 시위대가 시위를 마치고 보신각 근처의 거리를 점거하고 있었던 와중에 아마도 어떤 술취한 운전자가(운전자 외에도 2명의 친구가 더 있었다) 시위대와 경찰의 통제선 사이에 갇혔던 모양이다. 술도 취했겠다, 이 친구가 시위대를 향해 욕을 했던 것 같고, 흥분한 시위대에 의해 갇힌 이 친구는 도망을 가야 한다는 필사적인 각오로 차를 몰았고, 시위대 5명을 다치게 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간에 시위대는 흥분했고, 경찰에 인도된 그 친구의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원래 흥분한 시위대는 건드리는 법이 아닌데..
여하튼 뉴스에서도 그리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 사건은 어떤 음주운전자의 실수로 얼버무려졌다. 나도 뒤늦게 참여하게 되어서 자초지종은 몰랐지만 대충 그런 사건이었던 듯 하다. 파출소에서 종로경찰서까지 이어진 민노씨와 15살 먹은 어떤 아이의 우정이 사실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는데 그건 민노씨에게 들으시길 바란다. 계속 "두건이형!(민노씨, 그날 두건 쓰셨다)"을 찾던 그 아이와 민노씨의 우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어떤 것이었다.
15살 먹은 어린 아이가 시위에 참여해 경찰을 향해 욕을 날린다는 것이 하나의 충격이었다면, 내게 또하나의 충격이자, 오래 보아온 나를 설레이게 하는 모습은 한 미친 양키의 도발이었다. 다굴의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현피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수백명의 시위대 정면에서 시위대를 향해
"Kim Jung Il has killed two millions of people!"
을 외치는 그 양키의 모습은 가히 내게 충격적이었다. 민노씨와 승환씨가 뽀샵을 할 것이냐 물으셨지만 난 그냥 올린다. 고소하려면 해라. 출금 되기 전에 난 이 나라 뜬다. 희미한 얼굴은 분명 미국인의 그것이라고 보일만한 이미지다.
저 양키, 무려 이십여분 동안, 위에 내가 적은 대사를 큰소리로 시위대를 향해 날렸다. 비록 못하는 영어일진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가서 인터뷰 다하고 취업했다. 자랑은 아니다 ㅡ.ㅡ) 들어보니 이 시점에 김정일을 깐다는 건, 시위대를 까겠다는 거로 들리더라. 주머니에 손 집어 넣고 다가갔다. 솔직히 한대 패주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늦었다. 덩치 좋은 한 청년이 그 녀석에게 "어이 몽키"라며 시비를 걸고 있었다. 더불어 시위대가 녀석을 노려보며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몇몇 시민은 녀석의 애인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취한 것 같으니 데려가라고 타이르고 있었고 녀석의 애인은 울고 있었다. 취한 양키는 몽키였다. 말을 듣지 않는다.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한다 해도 도가 지나친 것은 지나친 것이다. 시위대 앞에서 김정일의 인권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손 쳐도 시위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조중동이 촛불집회에 나오는 시민들에게 좌빨이라는 색깔을 입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생각과는 별개로, 도대체 대한민국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길래, 수백명의 시위대가 운집한 한 가운데서 외국인이 저런 구호를 외칠수 있을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럽게 우습게 보일까? 몇몇 자각 없는 부자들이 동남아에 건너가 그들에게 저지르는 부끄러운 일상처럼 저들도 우리를 그렇게 우습게 생각하는 것일까?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일개 외국인이 수백명과 맞장을 뜰 생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국가라면, 미국의 대통령을 도대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리고 이 땅의 민중들은 너무나 착하다는 사실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단 한번도 아래에서 위로의 완전한 혁명을 이루지 못한 이 땅의 민중들은 그 버릇 없는 몽키양키를 집으로 곱게 돌려보냈다. 어떤 복수도 헤꼬지도 없었다. 그냥 그 친구에게 그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말하는 것이 이 땅의 민중이 가진 상식이었다. 착하다는 것이 죄는 아니다. 이 땅의 민중은 착하다. 그래 착하다.
오래전에 내가 썼듯이 부쉬가 온다. 8월 5일이다. 그 녀석이 온다는 것은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의미다. 촛불은 여전히 밝혀져 있고, 교욱감 선거는 우리의 승리로 점철될 것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를 방문하는 그의 비합리적인 행위는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다. 녀석에게 이 착한, 하지만 한스럽고 무서운 민중의 목소리를 한번쯤은 반드시 들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녀석이 퇴임을 한 후에라도 죽기전에 한번쯤 대한민국에서의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런지 모른다. 아니 그런 두뇌가 없는 녀석일지라도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이익은 다양하고 뚜렷하다. 미국의 잃어버린 10년을 상징하는 녀석에게 세상의 평화라는, 깡패국가의 새로운 제국주의를 거부한다는 목소리를 상기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의 그것처럼 깨끗하고 큰 목소리라면 더욱 어울릴 것이다. 부쉬가 우리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인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부끄럽다. 엊그제 미국대사관에 가서 그 건방지기 짝이 없는 영사의 면전 앞에서 나의 학문을 이야기하고 취업비자를 얻은 나는 부끄럽다. 무엇으로 변명하던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상황에서 그래도 나는 말하고 싶다. 세상의 가치는 한 국가의 깡패됨이 사라지는 그 시점에 얻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 깡패국가의 일개 시민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시위대를 향해 욕을 하는 그런 스탠스는 세계의 불행이라고. 그리고 그런 경멸과 압박의 정치학이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이 가진 반미감정을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녀석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대충 스티브라 부르자. 한마디 하고 싶다.
"스티브, 밤길 조심해라. 밤에 만나면 많이 아플거야."
'래디컬(Radical) 바이올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올블로그, 성선택, 그리고 블로그 저널 (27) | 2008/08/03 |
|---|---|
| 포털을 넘어 (10) | 2008/08/01 |
| 어떤 양키에 관하여 (15) | 2008/07/29 |
| 보수주의자 소넷씨의 잡학다식에 관하여 (16) | 2008/07/22 |
| 쓰레기와 신 (10) | 2008/07/21 |
| 삼성이라는 종교 (4) | 2008/07/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