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신

래디컬(Radical) 바이올로지 2008/07/21 13:25 Posted by 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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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Junk DNA를 일종의 기생체라고 규정했을 때, 그리고 그가 그 쓰레기더미로부터 어떤 기능을 구제해내려고 노력하는 일군의 생물학자들에게 쓸모없는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을 때, 나는 도킨스의 편이었다. 실험을 해볼 수는 없었지만, 인간유전체의 95%이상을 차지하는 이 쓰레기DNA들에 만약 기능이 있다면 무차별적인 돌연변이 혹은 바이러스나 트랜스포존의 공격으로부터 개체의 생존을 높여주는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비터가 사용하는 할루시네이션 기능처럼, 이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은 시즈탱크의 포격으로부터 진짜 드라군을 보호하는 환영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겨우 2% 정도 되는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98%나 되는 쓰레기들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비극의 파레토 법칙조차 20:80의 비율은 지키는데, 이건 2:98이다. 2%의 DNA 귀족을 지키기 위해 98%의 의미 없는 시퀀스들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된다.

실상 경제학적으로 따지자면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돌연변이에 의한 치사율이 얼마나 높을지 알 수 없지만 98%의 물리적인 부위가 쓰레기라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방도가 없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 생물정보학에서 등장하는 그 쓰레기 부위에 존재한다는 유전자에 대한 논문들도 어쩌다 걸린 예외라는 식으로 넘겨버리곤 했다.

문제는 이런 쓰레기 DNA들의 80% 이상이-정확히는 74~93% 정도가- RNA로 전사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거다. 쓰레기라면, 그래서 일종의 무임승차를 했던 것이라면, 그것도 경제적인 효율성을 찾기 어려운 비율로 존재하는 마당에, 이젠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해가며 전사를 해댄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기성 논리가 아무리 논리적이라 해도 이건 경제학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정도의 무임승차자들은 유용하지도 무용하지도 않아서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지 않는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런 쓰레기들이 전사까지 된다면, 더욱이 기능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개체의 생존에 불합리할정도로 해롭다.

분명 이건 세계관의 차이를 넘어 과학의 분과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게다가 거기엔 과학자들의 사회학적인 측면까지 포함해야 할지 모른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신에 의한 완벽한 설계라는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연'이라는 세계관에 기대왔다. 도킨스처럼 적응주의라는 얼핏 매우 경제적인 세계관을 지닌 인물도 '눈먼 시계공'이라는 비유에 기대 진화의 무목적성과 땜질적 속성을 이야기 한다. 결국 도킨스의 지적처럼 생물학이란 겉으로 보기엔 목적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생명체에 관한 연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목적이 신에 의해 부여된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에 의해 오랜시간에 걸쳐 다음어져 온 것이라는 관점이 진화론의 핵심이다. 설계가 아니더라도 땜질은 그러한 목적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작동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관에서 쓰레기DNA들의 존재는 별다른 문제가 안된다. 자연선택은 눈먼시계공이고 언제나 땜질식으로 생명체들을 수선해왔기 때문이다. 95%의 쓰레기DNA는 그런 땜질 속에서 축적된 일종의 땜빵 자국이다.

오래전부터 분자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쓰레기DNA에도 기능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 배팅을 하고 있었다. 기능이 없어도 상관은 없지만, 우선 그들이 연구할 95%의 부위가 사라진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밥벌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회학적인 분석이 통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과학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실상 실험을 통해 이론을 구축해나가는 분자생물학자들은 밥벌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숨겨둔채 열심히 도구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어레이가 개발되고, 돈 많은 일본과 미국의 연구자들이 유전체 전체를 대상으로 전사체(transcriptome)연구에 착수했을 때, 웃기지도 않는 사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유전체가 전사된다. 이건 정말 헉!이다. 그렇게 전사된 RNA들은 도대체 뭘 한다는 말인가.

이젠 이런 말도 오간다. 가장 단순한 생물인 박테리아는 쓰레기DNA부위가 없는 매우 컴팩트한 유전체를 지니고 있고, 고등생물로 갈 수록 쓰레기DNA부위가 많아지기 때문에, 이런 쓰레기부위가 일종의 조절자로 기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쓰레기DNA는 몇몇 질병들에 연관되어 있고, 또 두뇌의 기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쓰레기더미로부터 만들어진 RNA들이 가진 기능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새로운 질문과 연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까지의 대답은 파인 튜닝(Fine Tuning)이라는 것인데, 가장 그럴듯한 대답이다. 복잡한 형질을 지녔고, 따라서 조절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고등생물의 경우엔 RNA가 일종의 튜너로 기능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 많은 쓰레기 더미들로부터 전사되는 RNA들도 각각의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절반은 그럴 것 같고, 절반은 도킨스 말처럼 무임승차한 애들일 것 같다. 그 비율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RNA들의 기능이 미세한 조절에 있다면 실험으로도 그 기능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험적 제약이 있는 만큼 도킨스의 가설이 살아남을 여지도 커지게 될 것 같다.

문제는 '존재하는 모든 것엔 기능이 있다'라는 이 분자생물학자들의 소박한 세계관이 창조과학자들에겐 '신의 완벽한 설계'라는 광신적 세계관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인터넷에서 Junk DNA를 검색해보면, 지적설계론자들에 의해 유전체학의 위대한 과업인 ENCODE project와 FANTOM consortium의 연구가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던 말던 사실 나랑은 별 상관이 없지만, 왠지 내가 사랑하는 학문이 모욕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한마디만 해두자면, 아무리 도킨스가 조금은 낡은 유전자 개념에 들떠 95%나 되는 DNA를 쓰레기로 취급해버렸다고는 해도, 그 비율이 줄어들 지언정 그 쓰레기DNA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점. 실험상의 제약도 그렇지만, 우리 유전체에는 정말 많은 쓰레기 같은 부위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니까.

이 신비한 현상들을 신의 섭리라는 틀로 이해해야만 안정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인지 항상 궁금한 것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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